요약
히가시노 게이고의 원작이긴 하지만 아니기도 합니다
범행, 사건, 수사, 자수, 자백 등은 원작 그대로의 것을 가져다 썼지만 디테일한 면에서는 멜로의 느낌을 살리기 위해서 원작스러움, 히가시노 게이고의 추리물스러움은 많이 포기했습니다. 아니 무디게 했다고 보는게 맞을 겁니다. 왜 이럴 수 밖에 없었을까 생각해보면 담당 형사이자 석고의 동창인 '민범' 의 캐릭터 설정을 보시면 아실 수 있습니다.
천재이자 괴짜로 불리는 유가와 마나부 교수가 형사가 물리학자로서가 아닌 탐정으로서 참가한 몇 안되는 사건이었고 또 스케일도 남달랐던 작품이었기 때문에 그와 그에게서 인간다움을 찾아주려고 노력한 우츠미 형사 콤비를 제외하다보니 이 모든 것을 민범 한 명으로 대체할 수 없었던 것에 대한 부작용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게다가 유가와 교수와 우츠미 콤비가 사건을 해결할 때에는 원작 그대로 추리에 대한 디테일한 부분을 신경써서 표현했지만 (그러기 위해서 원작자의 갈릴레오 시리즈, 드라마 '갈릴레오' 를 투자) 한국 영화판에서는 민범이 홀로 집요하게 파고든다는 설정이었고 사건을 해결하는 키를 선택함에 있어서 관객을 우롱하는 것인가? 원작 팬을 바보로 아는가? 싶을 정도로 허술함 그 자체입니다. 솔직히 눈빛 하나로 진범이 누구다! 라고 말하는 형사를 믿고 사건을 맡겨야 한다면 피해자 입장에선 공권력에 대한 믿음 보다는 불신만 커질 듯 합니다.



석고는 수다쟁이래요
원작은 물론 일본 영화판에서도 '이시가미' (한국판 '석고')는 수학 밖에 모르는, 타인과의 일상 생활에서 필요한 가장 최소한의 대화도 나누지 않는 어찌보면 사회 생활을 하면서도 세상과 단절된 인물이기도 했습니다. 이런 것이 가능한 것은 남의 일에 신경을 쓰지 않는 것이 배려이고 친절이라 여겨지는 일본 사회에서는 당연한 모습이었지만 한국 사회에서는 이시가미와 같은 인물이 사회 생활을 오랫 동안 유지하기 힘든 것이 현실인지라 이시가미 그대로를 가져올 수 없었을 겁니다.
다만 본 작품이 히가시노 게이고의 원작임을 홍보 전면에 내세웠었기 때문에 이전의 백야행과는 솔직히 다른 분위기였습니다. 게다가 배급사 역시도 히가시노 게이고의 '용의자 X의 헌신' 제 3의 전성기라고 불려도 무방할 정도로 만들기 위해서 무대인사 때 관객들에게 한국 영화 '용의자X' 띠지를 두른 소설 '용의자X의 헌신' 을 챙겨준 것을 보면 더더욱 그들에겐 용의자X의 헌신이란 원작을 벗어나지도, 벗어날 생각도 없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덕분에 이런 분위기에서 본 것이라 석고는 이시가미 그대로일 순 없다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수업 시간에서, 화선을 도와주면서, 동창이자 사건 담당 형사인 민범과 만나면서도 원작이나 일본 영화판과 달리 매우 많은 대화를 나눕니다. 수학만 알고, 사건의 진범으로서 쓸데없는 이야기를 하면 안된다는 것을 알고 있는 상황에서 평소보다 더욱 더 말을 줄여야 하는 입장인 것을 보면 석고를 연기한 류승범 때문에 본 작품을 폄하할 수 없지만 류승범이 연기한 석고 때문에 솔직히 유치함까지 느끼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내세우고 싶었던 히가시노 게이고의 출세작의 주인공이기도 했던 이시가미 = 석고임을 생각해보면 더더욱 말입니다.
단, 석고가 수다스러울 수 밖에 없는 이유 중 하나로, 개인적인 판단은 유가와 교수와 우츠미 형사의 몫을 석고와 민범이 채워야 했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긴 했습니다.



제목에서 '헌신' 을 뺐는데 일본판보다 더한 헌신을 보여준 석고
방은진 감독은 원작에서 가장 중요한 것들 중 하나인 제목에서 '헌신' 을 빼버렸습니다. 이 부분은 방은진 감독과 관객과의 대화에서도 언급됐었는데 그때 방은진 감독이 제목에서 '헌신' 을 뺀 부분을 원작자인 '히가시노 게이고' 씨가 상당히 안타까워 했다고 하는 후문을 알려주기도 했습니다.
저는 그 정보를 얻은 상태에서 본 작품을 봤는데 ...
정말 어이없게도 원작 만큼은 아니지만 적어도 일본 영화판과 비교해 석고의 화선에 대한 '헌신' 은 이시가미가 야스코에게 보여준 헌신과는 차원이 다를 정도로 (헌신 그자체는 우위를 논할 수 없겠지만 영상으로 표현함에 있어서는 차별될 정도로) 비유적으로 표현하면 석고의 헌신은 화선에겐 100마일의 돌직구였지만 이시가미의 헌신은 야스코에게 있어서 몸을 비트는 노모의 포크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석고의 이런 캐릭터 설정 덕분에 관객들 중 소수의 마니아라고 할 수 있는 원작, 일본 영화판을 본 분들에겐 마이너스로 작용할지 모르겠지만 대다수인 일반 관객들에겐 석고나 화선의 마음에 감정 이입할 수 있을 정도로 절절한 희생의 멜로 드라마를 볼 수 있었을 겁니다. 덕분에 남성 관객보다 여성 관객들의 후기에서 좋은 평가를 내렸다고 할 정도이니 여성 감독의 감성이 여성 관객의 마음엔 돌직구를 날린 것입니다.
그리고 석고는 원작의 이시가미가 야스코에게 했던 것과 달리 화선에게 다양한 장치를 해둡니다. 이 부분이 바로 방은진 감독 오리지널 이라고 봐도 무방한데 유일하게 이 부분에서 본 작품을 본 의의를 둡니다. 솔직히 원작을 보면서 이런 부분을 왜 표현하려 하지 않았을까 아니 야스코 혼자에게만 맡겨둔 것일까 하는 의문감을 가졌었기 때문에 어찌보면 너무나 당연한 부분이긴 하지만 방은진 감독이 이 부분을 대놓고 노골적으로 많은 시간을 할애해 표현해준 점에 대해선 감사함을 느꼈습니다. 덕분에 석고의 화선에 대한 헌신이 자폭에 가까운 희생으로 느낄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캐스팅과 설정의 아쉬움
'화선과 도시락 집', 물장사 경력과 쓰레기 같은 기둥 서방을 뒀었던 화선이라 캐릭터를 이요원이 기존에 연기했던 캐릭터들과 비교했을 때 이것은 연기 변신이라기 보다는 무리했다! 라는 생각이 관람 전 후 모두 동일했습니다. 게다가 석고가 주문하는 '좋은 아침' 도시락의 구성을 봤을 때 이게 과연 6,000원으로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일까? 체인점 도시락 집보다 규모도 크고 화려한 인테리어를 한 점을 봤을 때 더더욱 말입니다. "뭐, 원작자가 힘들게 구상해낸 디테일도 날렸는데 이런 부분에 대한 디테일 날리지 못할 이유도 없지. 뭐!"
'화선 조카, 석고에게 질문한 여고생' 화선 조카와 석고에게 질문한 여고생을 보니 화전 조카는 1995년생으로 나이는 여고생에 가깝긴 했지만 다크서클인지 아니면 눈이 깊은 것인지 시종일관 어두운 눈매가 일본 영화판과 차이가 있어 좀 아쉬웠고, (일본 영화판은 야스코의 딸이란 설정이었기 때문에 어려보여야 했지만) 민범에게 중요한 단서를 준 석고에게 질문한 여고생은 성인 역을 해야 어울릴 것 같은 피부를 가지고 있을 정도로 HD해상도 클로즈업한 화면에서 배우 얼굴에서 주름을 셀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